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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미움받을 용기

경험 혹은 트라우마란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인정욕구’를 과감히 포기하라는 주장도 흥미롭다.
남의 이목에 신경쓰느라 현재 자신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미움받는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자네는 지금 행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네. 왜냐하면 자네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중요한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다. 주어진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자네가 Y나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은것은 ‘무엇이 주어졌는가’ 에만 주목하기 때문일세
그러지 말고 ‘주어진것을 어떻게 활용할것인가’ 에 주목하게나 사실은 응모하지 않음으로써 ‘할수있다’ 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은거라네
남의 평가를 받고 싶지도 않고, 더욱이 졸작을 써서 냈다가 낙선하게 되는 현실에 마주치고 싶지 않은거지
시간만 있으면 할수있다. 환경만 허락된다면 쓸수있다. 나는 그런 재능이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살고 싶은걸세

문학상에 응모했다가 떨어지면 좀 어떤가? 그걸 계기로 더 성장할수 있고, 아니면 다른길을 찾으면 되지.
어쨌거나 시도를 해야 앞으로 나아갈수가 있다네
지금의 생활양식을 바꾼다는것은 그런거야. 시도하지 않으면 한발자국도 나아갈수 없어. 내가 할수 있는 일이란 일단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게 하는것이라네
이러한 접근방식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부여’ 라고 하지. 왜 자네가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지, 왜 단점에만 집중하며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것은 자네가 남에게 미움을 사고
인간관계속에서 상처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일세.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크든 작든 상처를 받게 되어 있고, 자네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 딱 10센티미터만 더 커도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키는 커서 뭐하려고? 너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능이 있잖아.
생각해보니 그렇더군. 체격깅 크고 우락부락한 남자는 그 자체로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지. 하지만
나처럼 체구가 작으면 상대방도 경계심을 풀지.

아들러는 ‘우월성 추구도 열등감도 병이아니라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성장을 하기위한 자극이다.’ 라고 말했네.
열등감이 제대로만 발현되면 노력과 성장의 촉진제가 되는거지
열등감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는거군요?
그렇치. 인간은 내면에 자리한 열등감을 없애기 이해 더욱 전진하려고 하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한발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더 행복해지려고 하네.

‘나는 학력이 낮다. 그러니 남보다 몇배 더 노력하자’ 라고 결심한다면 도리어 바람직하지 않겠나
하지만 열등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시작한 상태를 가르킨다네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수 없다. ‘
‘나는 못생겨서 결혼할수 없다’

정말로 자신이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걸세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누구 한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봐 겁이 나거든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것이라네
우리는 세로축이 존재하지 않는 평평한 공간을 걷고 있네. 우리가 걷는것은 누군가와 경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할수가 없다’ 라고 말이야
그것은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하지 못한걸세
인간이 혼자 사는것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사회적인 맥락속에서만 ‘개인’ 이 된다.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 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인정욕구’ 라고하죠. 인간관계의 고민은 그야말로 여기에 집약되어 있어요.
우리 인간은 늘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필요로 하며 살아가지요.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네

‘그 사람’ 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면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지. 하지만 인정받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것인가 하느냐면 그렇지는 않네
더 단적으로 말해 왜 타인에게 칭찬받기를 원하는걸까?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나는 가치가 있다’ 는 것을 실감할수 있거든요.
타인의 인정을 통해 열등감을 없앨수 있어요. 자신감이 생기죠.

인정받기를 바란 나머지 ‘이런사람이면 좋겠다’ 는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살게 되지, 즉 진정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되는거라네.

공부하는 것은 아이의 과제일세
‘공부해’ 라고 명령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에 비유하자면 흙투성이 발을 들이미는 행위일세 그러면 충돌을 피할수 없게 되지
우리는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라는 과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좋아하던 싫어하던 그것은 상대의 과제이지 내 과제가 아니다.
분리란 그런걸세 자네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지. 그래서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자 혈안이 돼 있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어느정도 거리가 필요하네.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상대와 마주보고 얘기조차 할수없네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것’ 일세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수없어.
자유롭게 살수없지
‘나를 싫어하느냐 마느냐’ 하는것은 타인의 과제고,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는 거기에 개입할수 없네.
물론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가는’ 노력은 할걸세. 하지만 거기서 물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 하는것은 그사람의 과제지.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 도 반드시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걸세

아이에게 ‘공부를 잘할수 있다’ 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스스로 과제를 해결할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거라네
강제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과제를 분리한 상태에서 자력으로 해결할수 있게 지원하는 거야.
그야말로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수는 없다’ 라는 말이지

평생 다 쓰지도 못할 재산을 모은 부자들도 대부분 지금 바쁘게 일하고 있다네
왜 일하는 걸까?
엄청난 부를 쌓고 자선활동을 매진하는 부자들조차도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고 ‘여기에 있어도 좋다’ 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거지.

일하느라 바빠서 가정을 돌볼 여유가 없다.
원래는 집안일에도 아이양육에도 혹은 친구와 교류하는 것이나 취미에도 전부 관심을 가져야 하네. 어느 한가지만 돌출되는 삶의 방식을 아들러는 인정하지 않네
회사 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삶을 사는거라네

인간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고 느낄때만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수 있다. 단 그때의 공헌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인생은 선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이 연속으로 되는것이라고 생각하게
분필로 그어진 실선을 확대경으로 보면 선이라고 여겨진 것이 실은 연속된 작은 점이라는것을 알게 되지
선처럼 보이는 삶은 점의 연속, 다시말해 인생이란 찰나(순간)의 연속이라네.
우리는 ‘지금, 여기’ 를 살아갈수 밖에 없어.

키네시스인생 - 시점과 종점을 보고 결과만 보는 현상
에네르게이아 인생 - 과정 자체를 결과로 보는 운동
매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수식을 풀고 단어를 외운다. 즉 춤을 추는거지. 그러면 반드시 ‘오늘 해낸 일’이 있을거야.
오늘이라는 하루는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네
큰 목표를 달성했다거나 하는것과는 상관없이 ‘지금, 여기’ 를 진지하게 산거지 그러면 아버지의 삶은 행복했을걸세

먼 장래에 이룰 목표를 설정하고 지금은 그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걸 하고 싶은데 아직 때가 아니니 그때가 되면 하자’ 라고 생각한다.
이런건 인생을 뒤로 미루는 삶의 방식이라네. 인생을 뒤로 미루는 한 우리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단색으로 칠해진 따분한 나날만 보내게 될걸세
그런데 먼 장래에 있을 대학 입시를 위해 공부하는 ‘지금,여기’도 이미 내 삶의 일부라네

자네가 어떠한 찰나를 보내더라도 설령 자네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공헌한다’ 는 길잡이 별만 놓치지 않는다면 헤멜일도 없고 뭘해도 상관없어.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며 자유롭게 살면 된다네
그리고 찰나인 ‘지금,여기’ 를 진지하게 춤추고 진지하게 사는걸세 과거를 보지말고 미래도 보지말고 완결된 찰나를 춤추듯 하는거야.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도 필요없네. 춤추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테니까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이란 그런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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