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다치바나 다카시
30대만 하더라도 영화를 보러가거나 파칭코를 하러 가거나 친구들과 만나 잡담을 하며 지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일은 거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재미있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을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놀고 싶은 욕구보다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훨씬 강한 것이지요.
지금 제 나이가 54세 인데 앞으로 남은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들기 사작하였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현재 84세이지만 여전히 건강하셔서, 수명만을 고려한다면 저도 80세까지는 살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맑은 머리를 가지고 제 자신이 만족할만한 지적수준을 유지하며 활동할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될지는 알수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운데 '형이상학'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철학분야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헌 가운데 하나인 이책의 첫줄에는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알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식욕,성욕과 함께 가장 근원적인 욕망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인것입니다.
식욕은 개채유지의 본능에 기초한 욕구, 성욕은 종족유지의 본능에 기초한 욕구
인간사회를 지금의 수준까지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바로 지적 욕구였음을 알수있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편리함이나 모든 실용품이 그 결과입니다.
지적욕구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ㅇ오토마톤 현상에 만족하며 곧 학습에 대한 의욕을 상실합니다. 새로운것은 더이상 배울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오직 여러가지 육체적 쾌락을 즐기거나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TV를 보면서 실없이 웃으며 살아가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0대 정도가 되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집니다. 반면 지적욕구의 수준이 높은 사람은 어떤것이 오토마톤화 되고 나면 자신의 의식을 새로운곳으로 이끌어, 다음에는 이것을, 그다음에는 저것을 학습하려고 찾아 나섭니다.
오토마톤호된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지적 욕구를 항상 새로운것을 향해 돌리는 인간이야말로 지속적으로 내면적인 성장을 이룰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런 삶의 방식이야 말로 인간으로서 보다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영역에서 최첨단을 자랑하는 분야가 확대되면 될수록 자신이 연구하고 관여하는 최첨단의 분야에서는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그 밖의 분야에서는 전혀 모르는 지성의 소유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가 안고 있는 지적상황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어느날 굉장한 지혜를 가진 천재적인 존재가 나타나 제대로 확실하게 정리해 줄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면 그런 기대는 버리십시오.
나자신조차 질릴 정도로 광범위한 테마로 글을 썻다. 스페셜리스트 시대에 오히려 제너럴 리스트쪽이 내 성격에 맞았다. 흥미를 끄는 분야가 이것 저것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아무래도 결정을 잘 못한다.
어학을 배우려면 좀 집중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일주일에 한번 1년동안 하는것보다 매일매일 한달동안 하는 편이 낫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때 대체로 어학은 어학 이외의 다른것을 모두 잊고, 오직 어학에만 정신을 집중하여 매달리는 방법을 택한다면 한달만 공부해도 어느정도 효과를 얻을수 있다.
어학만큼은 순수독학, 즉 책을 보고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을 피하는것이 좋다.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지불하고, 간으한 한 엄격한 선생님에게 배우는것이 좋다.
책은 거칠게 다루는것이 좋다.
나중에 헌책방에 팔기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보겠다는 식의 구도쇠발상은 버리는게 좋다.
10권 구입한 책가운데 20%정도는 버릴책이라는 각오를 미리 해둬라.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마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채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한 짧은 시간안에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밖에 없다.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마라
꼭 메모리를 하고 싶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 메모를 위해 다시한번 읽는 편이 시간상 훨씬 경제적이다 .
메모를 하면서 한권 읽는 사이에 다섯권의 관련 서적을 읽을수 있다 .
책을 읽을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
세계문학전집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모파상,하디,로렐스, 헤세, 헤밍웨이
현대문학전집
에밀졸라, 앙드레지드,릴케,존스타인벡,윌리엄 서머셋 모음,토마스만
이무렵부터 영미권 문학작품은 원어로 읽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헨리밀러 작품의 경우, 원작을 살려 충실히 번역하면 분명 외설 시비에 휘말려 범죄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 번역된 헨리밀러의 작품은 모두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번역한것
그래서 저는 그의 작품을 대부분 영어로 읽었습니다.
에콜로지 라는 개념을 접했을때 '세계를 푸는 열쇠 하나를 손에 넣은 기분이었다'
저는 분석보다는 통합, 일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경제관련분야에서도 역시 수학은 필요합니다.
수학에 익숙해 지지 않으면 바로 수학에 당하고 말것입니다.
책에는 처음부터 끝가지 읽어야 할책과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으면 되는 책이 있습니다.
일할때의 자료는 발췌독에 해당되는데 중요한점은 효율적으로 얼마나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는가에 있습니다.
목차, 색인을 활용하는것은 물론 이정도(1초에 한쪽정도의 속도로 책장을 넘기면서) 의 속도로 책장을 넘기는것만으로도 필요한 부부은 눈에 띄기 마련이거든요.
인간의 뇌가 가진 작용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뇌 관련 학습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인간의 뇌는 상당 부분이 의식화 되지 않는데도 할일은 제대로 하고 있다는것입니다.
책의 경우 보통 '읽는다' 라고 하면 의식을 집중하여 읽는 것을 말하지만 이렇게 책장을 넘기다가도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것이 발견되면 눈이 크게 떠지면서 그것을 찾아낼수 있게 되는것입니다. 다시 말해, 뇌에는 자동적인 모니터 작용 같은것이 들어있슨비다 .이것을 활요앟면 1초에 한쪽이라도 거뜬히 읽을수 있습니다 최근, 속독술을 설명한 책을 사서 읽어보니 비슷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더군요.
다치바나씨는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속도가 다른사람에 비해 매우 빠른편이거 같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시간에 쫒기고 있는가와 상관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분야을 공부해야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내일은 이 사람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듣겠다거나, 논쟁이 벌어져서 다음 원고 마감까지 상대방을 몰아붙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필사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전문가가 오랜시간에 걸쳐 자신들의 논리를 축적시켜 내린 결론이라도 밖에서 보기엔 뭔가 이상하게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퀴리부인 자서전]
[두 도시이야기] - 찰스디킨스, [수레바퀴 밑에서] - 헤르만 헤세
[폭풍의언덕] - 에밀리 브론테, [제인 에어] - 샬로트 브론테
[죄와벌] - 도스토예프스키, [인형의집] - 입센
[좁은문] - 앙드레지드, [적과흑] - 스탕달
[햄릿][로미오와줄리엣][오델로][멕베스][리어왕] - 셰익스피어
지금의 나의 독서는 모든 내용을 이해할순 없으므로 다소 피상적인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해할수 있는 부분만 받아들여 읽으면서 앞으로도 독서를 계속할 것이다.
퇴사의 변
만약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는 다면 1년에 365권을 읽을수 있고 10년이면 약 3600권이다. 아마 정말 읽을가치가 있는책은 그정도 일것이다. 내가 정말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골라 500권으로 추린다고 하더라도 5000일, 그러니까 14년정도 걸리게 된다.
회사를 다닌 30개월간 진정으로 읽고 싶은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문자로 표현되어 있는 저자의 심오한 세계로 내 정신이 빨려들어가 그곳에서 언어를 초월한 대화를 나누며 하나의 정신적 드라마를 전개해 가는 독서체험을 그동안 몇번이나 했을까?
점점 물리적으로 보는것에만 열중하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물리적으로 보는것에 완전히 길들여져 버릴거라는 생각이 들었을때 나는 보다 많은것을 보기 위해 지금은 조금 덜 보기로 결심하였다.
이것저것 잡담을 하면서 다치바나씨가 만들어준 우동을 먹기도 하고 ...그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일이 늦어졌다니.. 라고 불평하는 편집자가 있다면 아직 다치바나씨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노는것과 일하는것의 경계가 없는 사람이다.
'놀다' 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것을 하면서 즐기다' 라고 실려있지 않은가?
[우주로부터의 귀환],[뇌사] 등은 모두 그가 '재미있다' 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을 댄 저서들이다. 단 한번도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것을 일로 선택한적이 없다.
속독을 위해 차트를 만들어라
나는 서평을 쓰게 된 덕분에 책을 상당히 빨리 읽을수 있게 되었다.
원래부터 책을 읽는 속도는 빠른편이었는데 전보다도 훨씬 빨라졌다.
원고마감이 다가오면 아무래도 책을 읽지 않을수 없으므로 결국 전부 읽는다.
어떤 사람을 취재하게 되었을때 그사람이 집필한 저서나 그사람에 대해 쓴 책이 5권이라면 5권 전부 읽고 10권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10권 전부를 읽는데 정독이 불가능하면 적어도 대충 훑어보기는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해야할 상황에 쫒기면 , 보통 때는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속도로 일게 되기 마련이다.
속독에 대해
책에는 속독이 가능한 책과 불가능한 책이 있다 .
재미로 읽는 무협지나 판타지물 등은 본래 속독이 불가능하며, 속독으로 읽었다 하더라도 별다른 의미가 없게 된다.
천천히 읽어야 책읽기를 좀 더 오래 즐길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속독이 가능하고 또 속독하는 편이 더 나은 책은 읽는 것 자체를 즐기는 책이 아니라 정보가 가득차 있는 조금은 전문적인 내용의 책으로 실려 있는 정보를 취하는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참고자료 같은 종류이다.
정부의 [XX백서],[XX연감] 이런 책들은 대부분의 정보를 농축된 포인트를 모두 도표방식으로 수록하고 있으므로 그런 도표들 중심으로 보면 된다.
속독기술을 가르쳐 주는 책을 읽어보면 눈의 훈련등 갖가지 기술적인 방법을 설명하고 있지만 기술적인 방법보다느 어느정도 열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뇌의 움직임은 열중해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몇 배 이상 그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정보처리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므로 열중해서 책을 읽으면 자연히 속독히 가능해진다.
읽기 어려운 책을 어떻게 해서든지 읽을수 있는 기술은 없는것일까?
답은 그 책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책은 단락단위로 기술되어있고 단락이 모여 절과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말해 책은 단락 하나하나를 벽돌로 삼아 쌓아 올린 건축물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
벽돌(단락) 몇장이 모여 블록(절)을 만들고 블록 몇개가 모여 부분적인 구조물(장) 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체구조물(<--- 부분적인 구조물<-- 블록) 을 잘 파악해야 하는것이다.
책의 내용은 키워드를 기호로 연결한 도표로 만들어 시각화 할수 있다
다시 말해 전체 구조를 도표로 만들어 표시하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어떤 한권의 책도 한장의 도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머리속으로 그런 도표를 그려가면서 책을 읽어보는거이다 잘 그렸다, 못그렸다, 타당성이 있다 없다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것은 내머리속으로 나에게 익숙한 그런 체계를 만들었다는것
또하나의 중요한것은 키워드의 조합과 논리의 흐름이다.
책을 읽을때 단어가 표현하는 문장을 그대로 읽거나 문장이 표현하는 그대로 책 전체를 읽으려 하지 말고 책전체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제 그 흐름과 구조 핵심키워드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전체를 파악하는법
1. 장단위로 전체의 흐름을 파악한다.
2. 절단위로 좀더 세세한 흐름을 파악한다.
이때 문장 하나하나를 읽지 말고 단락단위로 단락의 첫문장만 끊어읽고 다음 단락의 첫문장으로 눈을 돌린다.
3. 여기에 덧붙여, 장이나 절의 작은 표제만 잘 일어두고 도표의 어느 정도 훑어 본다면 10분에서 30분이면 충분히 책 한구너을 읽을수 있다.
또하나 숙지해야 할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쪽씩 모든쪽을 우선 대충이라도 한번 훑어본다는것이다.
전체의 흐름과 키워드를 파악하라.
대충 훑어볼때 문자를 읽는 작업은 물론 원추 세포가 중심 활동을 담당하지만, 그 사이에 나머지 95%의 간상세포가 놀고 있는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주변의 관련 정보를 뇌에 보내고 있으며, 그것이 뇌에 보내고 있으며 그것이 뇌의 인지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어쨌든 한번 훑어보는 행위로 인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많은 정보가 자동적으로 입력되고 있는 셈이다.
(원추세포로 책 한줄을 읽을때 사실은 간상 세포를 활용하여 몇줄을 한꺼번에 훑어보고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잠깐 대충 훑어보더라도 이런 작용에 의해 어쨌든 책의 흐름을 파악할수 있으며 그 책에서 다루고 있는 테마의 주요한 키워드가 무엇인지 정도는 저절로 알수 있게 되는것이다.
대략적인 책의 흐름을 파악했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단계에서 그저그런 책으로 파악되었따면
주저없이 버린다. 다시 읽어봐야할 가치가 있다 판단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한번 단락을 단위로 좀더 세밀하게 읽어보는것이다 단락단위로 한문장 내지는 몇개의 문장으로 늘려서 읽어본다.
어느정도로 세세하게 읽을것인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혹은 자기 좋을대로 적당하게 정한다. 내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눈이 머무는 곳만 읽고 지나간다. 또한 자연스럽게 눈이 머문 어느 한곳에서부터 전체 문장을 통독하기 시작한 경우도 적지 않다.
머리속에 왠지 계속 맴도는 키워드가 잉르경우 주변시야 속에 그 키워드가 나타나면 눈은 자연히 그곳에 머물게 된다.
의식적으로 글을 읽지 않아도 책위로 눈이 움직이는것만으로도(한쪽을 읽는데 1초가 채 걸리지 않아도 된다) 눈은 정확히 중요한곳에 머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뇌의 무의식이 행하는 작용을 믿는것이다.
이런 방법을 스스로 시도해보면 전체의 흐름과 키워드를 파악하는것만으로 그처럼 빨리 책을 읽을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할것이다.
읽기 어려운 책을 전부 읽어보겠다고 몇번이고 도전했다가 도중에 그만두는것보다는 몇번이고 가볍게 대략적으로나마 반복해서 읽는 방법이 결국은 그 책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두번째 읽을때는 단락과 단락사이를 잇는 접속사, 접속구에 주의를 기울여 읽어보는것도 좋을것이다.
즉, 세부적인 사항을 먼저 읽고나서 전체적으로 읽는 일반적인 책 읽기 순서와 정반대로, 대략적인 '파악'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세세한 것을 파악해 가는 이방법은 책읽기 방법 그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셈이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전체상을 볼수 없으므로,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멀리 떨어지기도 하면서 항상 전체적인것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까 왠지 궁금하다고 느끼면 바짝 다가가 확대경을 사용해서 세부적인 부분을 관찰해보고 바로 몸을 세워 그 세부적인 부분이 전체속에서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책의 전체상을 파악한다. 머리말고 맺음말을 확실하게 읽고, 목차를 구조적으로 정확히 파악한 다음 책을 대충 넘기며 훑어본다면 (작은 표제의 흐름을 어느정도 파악한다면) 개략적인 전체상을 파악할수 있을것이다.
처음부터 순차적인 책읽기 방법을 취한다면 한평생이 아니라 수백년이 걸려도 다 읽지 못할만큼 엄청난 양이다. 더구나 그 안에는 쓰리기만도 못한것이 산더미만큼 섞여 있기 때문에 '전부, 처음부터 차분히 읽는' 방식은 절대로 시도할 필요가 없는 무모한 짓이다
다시한번 속독기술의 핵심 요령을 말하자면,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은 정확하게 알수 없더라도 단락 다위로 대충 훑어보고 나서 다시 훑어본다. 그렇게 일단 끝까지 일어본뒤 다시 한번 읽을지 생각해본다.
단어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보며 전체를 읽어야 하는 책이 의외로 적다는 사실을 깨닫고,
'맛을 음미하며 즐기듯 찬찬히 읽는다',
'논리를 정확하게 파악해가며 정독한다',
'필요한부분,궁금한 점만 찾아 읽는다.'
'대충 책장을 넘기며 뤁어보다가 눈이 머문곳만을 읽는다'
'키워드 중심으로 정보만 읽는다' 등 자신의 책 읽기 방법에 몇가지 변화ㅁ를 주면 그 책에 맞는 책읽기 방법을 선택하는것이다.
종이로 된 책이 전자미디어를 이긴다.
종이책이 일람성과 속독성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점이다.
책한권을 대충 훑어보며 책장을 넘기다가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 부분을 읽거나, 도표나 사진을 보고 전체 내용을 파악하면서 이부분을 읽다가 다른 부분을 읽기도 하고, 또 접어서 표시해 놓은 쪽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도 하면서 종이책 한권을 읽는것은 간단하다. 모니터상에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읽을수 있겠지만, 대충 훑어보는 속독에 소요되는 시간과 그것을 통해 얻을수 있는(머리에 남는) 정보의 질과 양의 측면에서 종이 책이 훨씬 앞선다.
책 한권 분량을 다 읽었을때 남는 정보 획득의 성취감도 차이가 날뿐만 아니라, 육체(눈)의 두뇌의 피로감도 전혀 다른다.
앞으로의 시대는 모든 정보 미디어에서 속독이 더욱 요구될것이며, 속독은 두말할것도 없이 종이로 된 책으로 읽는것이 유리하다.
종이책의 책장을 넘기는 것과 디지털 콘텐츠의 스크롤 혹은 인덱스나 목차를 이용하여 쪽을 찾아가는것은 비슷한듯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지금 이책의 어느부분을 읽고 있는가 하는 정보는 종이책이 바로 확인이 가능해서 유리하다.
또한 종이 여기저기에 메모를 하고 이곳저곳 밑줄을 긋거나 자신만이 알수있도록 기호나 부호를 붙일수 있으며 접어서 표시를 하거나 포스트잇을 붙여 놓을수도 있다. 이처럼 단물빨아먹든 그 책을 철저하게 이용할수 있다는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컴퓨터상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할수는 있겠지만, 마음대로 이용하기가 곤란하고 나중에 재이용할(책장을 넘기며 중요한 사항을 책에 메모하거나 밑줄 그은 부분을 빠른시간내에 찾아 생각을 재검토) 때의 편의성 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한 종이책의 또 다른 장점은 사물로서의 매력이 있다는점이다.
보는것만으로도 좋은 책이 있어서 그런 책은 읽기 전에 먼저 손에 들고 책장을 넘겨보며 그 내용과 함께 사물로서 존재감을 즐기면서 요모조모 자세히 뜯어보거나 만져보며 즐기는 기쁨에 젖게 된다. 그것은 책이 사물이기 때문에 가질수 있는 기쁨으로 모니터속의 디지털 콘텐츠에서는 절대로 느낄수 없는것이다.
언어의 시작은 '이것,그것,저것' 정도의 지시어 수준이었겠지만, 점차 개념이라고 할 만한 것을 획득함으로써 인간의 사고능력은 비약적으로 신장하기 시작하였다.
구상개념에서 출발하여 추상개념을 획득함으로써 그능력은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우리들이 보통 생각을 할때는 언제나 개념을 이용하여 생각하기 때문에 기념획득이전의 인간 머리속에 무엇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것이 그 당시 인간에게 '생각한다' 는것이었는지, 지금 우리들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하지만 뇌의 구조를 고려할때, 개념 획득 이전 인간의 뇌속에 가득차 있던것은 비주얼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비주얼한 이미지에 청각, 촉각,후각, 시각(이미지) 등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육체의 전 감각 기관과 리얼리티의 만남을 통해 생긴 '전감각 복합적 기억단편(이미지)' 이다.
뇌속의 조절대상을 분류하기 위해 이미지를 그린다음, 그 그려진 이미지를 단순화시켜 기호화 하고 나아가 그것을 음성으로 지시하여 나타내는 과정을 인식함으로써 회화표현, 기호화, 음성표현 이 세가지가 하나가 되어 언어를 획득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