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독서는 육상경기와 닮은 점이 많아요. 그냥 놔두면 몸이 무디어지는것처럼 머리도 무디어지고 맙니다.
아버지도 어미니도 그 책을 소중하게 읽는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런 모습이 어린 시절에도 어딘지 부러워서 따라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여러분이 사 온 책을 교실 학급문고에 두어도 좋다. 책값은 학급비에서 돌려준다’
하니야도 도스토에프스키를 해석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쓰고 있습니다.
도서관과 서점을 자주 드나들어야 합니다. 저는 항상 돈이 부족했습니다.  가장 빠른 것은 책을 훔치는것입니다만 이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요.
그래서 도서관에 갔습니다.  도서관은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본인의 의지하에 본인의 시간과 의지를 투자해서 책을 마음껏 볼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차례 독서3분이 독서의 운명을 좌우한다.
대부분의 책은 차례에 그 책의 윤곽이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제대로 읽어야만 합니다.  3분 정도의 짧은 순간에 차례를 읽어두었는지 아닌지가 그뒤의 독서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엘리스의 ‘거울의 나라’ 와 같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수 없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것은 판타지나 SF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서 체험 그 자체의 기저에 있는 저울을 말합니다.
헤세의 <데미안> 은 정신이나 의식, 마음의 어두운 측며을 다룬 청춘 문학의 걸작입니다. 소년 싱클레어가 다갈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데미안에게 감화되는 이야기있는 그 데미안에게는 ‘성스러운 일탈’ 이 있습니다. 그것이 매력입니다. 하지만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자신에게 빠져 ‘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데미안은 베아트리체라는 소녀와 사랑을 하고, 더 나아가 피스토리우스라는 이교도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그러면 친구와 ‘공유’ 하는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때 비로서 싱클레어가 깨닫습니다. 자신은 데미안에게 빠져들고 싶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상대가 데미안의 엄마였다는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입니다.

<안나 카레니나> 안나가 당시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을 부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나열한 모든 책의 모형이 바로 < 안나 카레니나> 한권에 들어가 있습니다. 과연 톨스토이 입니다.

‘독서 리듬’ 이라니요?
국학 언저리를 읽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내용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는 학자나 사상가가 되고 싶은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만 연구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이나 국학을 지속적으로 읽는다는것은 역시 제개는 힘든일입니다. 점점 독서력이 떨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때마다 다른 책을 읽어 독서력을 회복하는것입니다. 시집을 읽거나 , 미스테리 하드보일드 , 첩보소설을 읽습니다.
독서 이외의 다른일로 기분전환하는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독서모드로 들어가는 행위로 기분전환을 합니다.  큰 틀에서 독서활동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찮은 책’ 은 피하고 ‘좋은 책’ 만 만나려는 생각은 좋치 못한가요?
마이아벨리< 군주론>  , <아라비안나이트> <데카메론>, 스탕달의 < 적과흙>,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 디킨즈의 <올리버 트위스트>  나보코프의 <로리타> 이 명저들이 모두 당시에는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놀랄만한 일입니다. 미국 출판사상 삭제나 수정이 가장 심하게 이루어진 책이 바로 <프랭클린 자서전> 입니다.
몽테뉴는 ‘ 사람들은 금지된것부터 보고 싶어한다’ 고 했습니다

로버트 드니로와 메릴스트립 주연의 영화 <폴링 인 러브> - 뉴욕의 한 사점에서 가족을 위해 기프트북을 산 낯선 남녀가 서로 책을 떨어뜨렸다가 잘못가지고 가는 바람에 다시 만나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정치는 ‘공정함’ 만 쫒아다니고 경제는 ‘효율성’ 만 쫒아다닐때, 문화는 그 ‘가치’를 모순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다니엘 벨<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읽는 사람이 하기에 따라서 독서는 보다 유쾌해 질수 있다. 쓰는 사람이 언제나 좋은 내용을 쓴다고 단정할수는 없다. 저자 30, 독자 30, 판매자 30 , 나머지 우연 10 의 비율로 책임을 지는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이 후기부터 읽은 독자가 있다면 다시 ‘차례’ 로 돌아가 책의 내용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이 책의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아주 단편적입니다. 이것을 지식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사실 단순한 정보나 데이터의 파편에 불과한 경우가 많치요. 마치 예상문제를 달달 외워 퀴즈를 푸는 사람처럼 획일적인 독서는 정보를 단편적으로 주입받게 된다는 것, 이런 단편적 정보를 기억해 두었다가 재생하는 지식이 아니라, 다양한 책의 내용을 창의적으로 편집해서 스스로의 지혜를 발휘할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까요?

책은 노트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계속해서 메모하는 수첩입니다.  책은 자기가 처음부터 필기를 해야 하는 노트라기 보다는 저자가 써놓은것 위에 자신의 생각을 더하는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훨씬 편리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책을 깨끗하게 봐야 한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이 주입해서 생긴 강박관념이 아닐까요? 어쩌면 책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습관도 교과서를 1년동안 끝내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시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권 교육의 현실에서는 정해진 시험범위에 따라 중간고사까지는 어디까지 끝내야 된다는 식의 교과서 읽기가 강요되지요.

과다한 입시중심교육은 진정한 의미의 독서로부터 오히려 멀어지게 하고 책은 언제나 신입사원이 정장처럼 반듯하게 읽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항상 시험을 전제로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시험일정에 맞춰 교과서 진도범위가 균등하게 나눠지고, 그안에는 시험에 잘 나오는 문제인지 아닌지에 따라 지식의 경중을 판단하게 합니다.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살때도 입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나오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에게 맞는 옷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렇게 사 온 옷이지만 몇 번 입다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그냥 옷장에 걸어두기 마련입니다.

하이브리드라는 개념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모호함이 아닐까요? 모호함은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서양보다는 일원론적 사고를 가진 동양에 더욱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비빔밥이나 중국의 볶음밥 같은 식문화가 서양에는 없습니다. 서양인은 이렇게 뒤섞여 있으면 엉망진창이라고 여기는것 같습니다.
절대 크기나 장르별로 책을 분류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랍니다. 자기 나름의 독서경험이나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의 맥락을 토대로 책을 다시 배열해 보면 앞으로의 독서에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가기전에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강한 의문, 러시아의 시대적 상황등 복잡한 문제를 형제 사이의 갈등으로 전개해 나가는데 인간의 내면을 이만큼 깊이 있는 성찰한 작가는 거의 없습니다.  
빅토르위고 < 레미제라블> 은 전체 열권으로 이루어진 대화소설입니다.
<레미제라블> 은 법률 때문에 생겨난 사회적 처벌이 문명의 한복판에 인공적인 지옥을 만들고, 인간이 만든 운명이 신이 만들어야 할 숙명을 헝클어뜨리고 있는 현대 사회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이 작품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악을 고발하려 했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은 성인이 되어서 제대로 된 <레미제라블> 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행복하라  (0) 2023.06.29
승자독식사회  (0) 2023.06.20
마음가는 대로 해라  (0) 2023.06.17
일 잘하는 사람 , 일못하는 사람  (0) 2023.06.10
도둑맞은 집중력  (1) 2023.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