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아이의 삶만큼 자신의 삶도 소중히 여기는 '나다운 엄마' 가 되는것이다
엄마가 자기몸에 맞는 편안한 '엄마 옷'을 입어야 엄마의 삶이 즐겁고, 그래야 아이의 인생도 편안하게 흘러간다
엄마가 여유로워야 아이가 그 빈공간에 자신을 펼친다.
엄마는 아이를 돌보고 키우지만 아이와 엄마는 완벽하게 서로 다른 존재다
따라서 아이의 성취는 엄마의 공이 아니며, 아이의 실패역시 엄마의 탓은 아니다
그러니 엄마들은 '아이에겐 스스로 자라는 힘이 있다'는것을 믿어야 한다.
아이시간표를 짜면서도 정작 아이에게는 묻지 않았다.
아이가 무엇을 할때 즐거운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디 아이에게만 묻지 않았던가 나는 나에게도 묻지 않았다
아들이 잘 나가면 대체 나한테 뭐가 좋은지 묻지 않았다.
아이가 의사가 된들 내가 의사가 되는것도 아니고, 아아기 부자가 된들 내가 부자가 된것도 아닌데
그것이 왜 나의 자랑이 되고 나의 좌절이 되는지를 한번도 물어본적이 없었다.
그저 '당연한' 엄마 노릇으로 알고 있었던 일을 '당연하게' 했을 뿐이었다.
아이가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을때야
내가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모든 일은 아이'만' 을 위한게 아니었음을
내가 한번도 아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고, 아이가 원하는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이를 위한다면 차다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나았다
엄마는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웃고 함께 꿈꾸는 사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중 '두번째 화살은 맞지마라' 라는 말이 있다.
첫번째 화살은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맞을수밖에 없는 몸과 마음의 괴로움이지만
거기에 두번째 화살을 쏘아대는건 스스로 라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머리위에 비둘기 똥이 떨어졌다. 이건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냥 일어나는일이다.
어디선가 첫번째 화살이 휙 날아와 내몸에 박히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두번째 화살을 쏘아댄다.
'내가 얼마나 운이 없는 사람이면 하고많은 장소중에 비둘기 똥이 내머리위에 떨어질까?'
혹은 넘어져서 우는 아이에게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딴생각하고 가다가 넘어지잖아'
그역시 두번째 화살을 쏘는 일이다.
나자신을 자책하고 첫번째 화살을 피할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착한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때 비로서 최선을 다할수 있다.
혹은 아이가 실수로 얼음통에 얼음을 빼다가 얼음통을 떨어뜨렸다
얼음은 온방바닥에 쏟아졌고 나는 거기에 두번째 화살을 쏘아댔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워' 지켜볼꺼야.. 라고 엄하게 말한다.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저 잠깐의 휴식과 옛친구들과의 수다, 또는 엄마 자신만을 위한 맛있는 밥한끼만으로도
기분을 달랠수 있다.
어떤 엄마 노릇을 하더라도 두가지는 반드시 중요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법
타인을 사랑하는 법
엄마가 아이에게 전해 주어야 할것은 이 두가지가 전부입니다.
자본론
어느수준이상으로 쌓인 잉여화폐가 자본이 되고, 자본이 된 화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스스로 증식한다는 사실
그리고 돈은 모든 가치 위에서서 전지전능한 신이 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왜 돈을 버는가?' 를 아무도 묻지 않고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사실
서울이라는 대도시는 '돈의 왕국' 이었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증식 자체가 목적인 무한 증식을 강요하는
무시무시한 외줄타기에서 내려와야 했다.
미래를 대비하느라 현재의 행복을 늘 뒷전에 두거나 , 아이의 앞날을 걱정하느라
가족의 오늘을 망치고 있다면 아이는 그상황을 보면서 과연 무엇을 배우겠는가?
삶은 유한하고 손에 잡히는것은 '오늘' 뿐이니 지금 행복을 함께 마음껏 누리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미래라는 이름의 불안감에 항상 포위당할수 밖에 없다.
내일을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와 설렘 그리고 희망으로 맞이하려면 하루하루를 그렇게 채워야 한다.
경쟁에 휘말려 있는건 아닌지
우리 사회는 경쟁을 부추깁니다. 정상,표준, 뛰어남의 기준이 획일적이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사람을 내몹니다
학교에서도, TV에서도, 시장에서도, 거리에서도 더 똑똑하고 더 능력있고 더 예쁘고 더 날씬하고
더 멋지고 더 돈이 많은것이 최고이자 유일한 삶의 목표라고 말합니다 .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멋지고 더 돈이 많은게 꼭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쟁의 쳇바퀴를 한번 돌게 되면
자신의 힘으로 나오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하는것이 아니라 그저 쳇바퀴가 돌고 있어서 멈추지 못하고 페달만 밟게 됩니다.
만약 아이의 장점은 안보이고 단점만 보인다면 아이가 잘하는게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면 엄마자신이
어떤 경쟁논리에 휘말려 있는건 아닌지 살펴보고 멈추어야 합니다.
엄마가 우울한것보다 게으른게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훨씬낫다
쉴때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말고 당당히 쉬어야 개운하고 떳떳하게 다시 '육아전선'으로 돌아올수 있기 때문이다
산소호흡기가 내려왔을때는 '본인'이 먼저 써라.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린다.
엄마가 살아야 아이도 산다.
아이는 엄마의 생명을 토양으로 삼아 자라는 나무라는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유머러스한 엄마는 절대로 아이와 틀어지지 않는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채플린-
'하우스' 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말기 소아암 환아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레고리 하우스는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아이가 기적적으로 생명을 이어가는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여러 검사 결과들은 소녀를 '금방 죽을 아이' 라고 말해주는데 정작 아이는 평안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슬퍼하는 어른들을 위로한다.
겨우 아홉살밖에 안된 아이가 고통이나 죽음앞에서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혹시
뇌에 종양이 전이되었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한 하우스는 소녀의 성숙함이 '비정상' 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하우스는 소녀에게 위험한 시술을 제안한다.
성공한다해도 고작 1년만 삶을 연장할수 있는 시술, 시술 도중에 사망할수도 있고, 새로 얻은 1년의 삶도
고통없는 오나전한 삶은 아닐터였다. 위험을 알면서도 소녀가 기꺼이 시술을 받겠다고 결정하자
하우스는 전날밤 병실로 찾아가 아이에게 냉혹하게 묻는다.
'너, 어차피 죽을거 알잖아, 나같으면 고통을 빨리 끝내고 죽을텐데, 고작 1년을 위해 이 시술을 받는 이유가 뭐냐?
시술이 겁나지 않니?'
아이는 그제서야 눈물을 흘리며 시술받기가 겁나고 두렵다고 말한다. 가끔 죽는게 나을거라는 생각도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를 아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엄마가 제가 더 머물기를 원하세요. 이건 제가 엄마에게 드리는 사랑이에요.'
아이는 '나만 왜그래?' 하는 억울함과 화남 없이 '나 좀 알아주지 ' 하는 기대와 욕심없이
할수없는건 그대로 순하게 받아들이고 할수 있는건 있는 힘껏 즐긴다.
아이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자기가 어떤처지이든 삶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
그게 아이가 사는법이다.
지금 누릴수 있는 삶의 즐거움보다 잃은것을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앞으로 더 갖지 못할까봐 불안해 하는
'엄마' 라는 사람은 그러니 아이에게 배울일이다.
문제는 성장을 위한 소중한 기회입니다.
문제가 있어야 성장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어야 해결하려는 동기가 생깁니다.
문제는 삶을 괴롭게 만드는 어려움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자극입니다.
엄마가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면 아이는 탄탄대로를 걷게 되는게 아니라 무기력, 무능력에 빠집니다.
어차피 엄마가 다 해결해 줄텐데 스스로 움직일 이유가 없으니까요
더 큰문제는 아이가 어려움을 견디는 힘이 약해져서 작은 좌절에도 짜증을 내고 떼가 늘어난다는거지요
아이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좌절을 견디는 힘과 자신감을 기르게 됩니다
'잘하고 있는거야'
아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때 '그래, 잘하고 있네' 한마디 해주세요
아이가 멍하게 있을때도 '그렇치, 사람이 멍할때도 있어야지, 잘하고 있는거야' 말해주세요
아이에게 동기를 심어주는데 이만한 말이 없습니다.
'괜찮아'
인도에 가면 사람들이 버릇처럼 말합니다. '노 프라블럼'
버스가 늦어도 노프라블럼, 비가와도 노프라블럼, 다쳐서 피가 철철 흘려도 노프라블럼입니다.
아이들이 아니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말이 이것입니다.
열심히 안하면 좀 어떻고, 정리 좀 못하면 어떻고 키좀 작으면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것도 아니고, 땅이 꺼지는것도 아닙니다.
또 지금 당장은 큰일처럼 보여도 지나고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지나가는 일에 크게 휘둘릴것 없습니다.
엄마가 아이보다 대범해져야 합니다.
아이가 힘들때, 울적할때, 화날때, 눈치볼때, '괜찮아' 다정하게 한마디 해주세요.
아이에게 힘이 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을 넘어가면 엄마의 손길이 하루종일 필요한 시기는 지납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엄마의 손길을 거두는것이 바람직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의사결정하고 실패 혹은 성공을 맛보고 다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니까요
아이에게 조금씩 삶의 결정권을 허용하려면 엄마가 자신만의 일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늦어도 이때부터는 파트타임으로라도 일을 하겠다' 마음속으로 결심하세요
놀이 치료의 '원리' 는 간단했다
1.아이가 주도하는대로 따라가라
2.판단,해석,예측 등을 모두 버리고, 아이가 한 '행동' 만 엄마의 언어로 말해주어라
3.놀이시간은 철저히 지켜라.
'총맍았네, 죽어야돼? 말아야돼 답을 아이에게 물어봐야 한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지적하지 않고, 토달지 않는다.
'선생님 저는 여기에 오는시간이 정말 유일하게 쉬는 시간이었어요. 여기서 얘기하면서 전 진짜 자유를 느꼈다니깐요'
나는 재빨리 내가 1년동안 무엇을 했는데 되돌아보았다. 무언가를 한기억은 나지 않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만 났다.
'그건 잘했고 이건 잘못했어' 라고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고 정답을 주지 않으려 애썼고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애썼다.
유일하게 하려고 애썼던 건 아이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고 받아적으며 집중했던 일이었다.
아이는 그동안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충분히 자기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존감 높은 아이의 뒤에는 늘 경청하는 엄마가 있다
아이의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를 펼칠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었을때 무럭무럭 자란다. 굳이 애써서 활기차고
재미있고 교육적으로 놀아주려 하지 않아도 엄마가 주의깊게 듣는다면 아이는 마음껏 자기를 제 결대로 만들어 갈것이다.
백마디 억지 칭찬보다 아이를 향한 감탄어린 눈길 한번이 낫다
이승욱- 천일의 입맞춤,눈맞춤 - 존재는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기어코 찾아내서 감탄하고 또 감탄하라
<아티스트 웨이> -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방법중 하나로 자신을 보물처럼 대하라
빛나고 아름다운 보석이나 보물을 봤을때를 상상해보았다
입밖으로 '와~ '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때 알았다.
'보물처럼 대하라'는 것은 감탄하라는 의미였다.
아이의 말에 , 행동에, 생각에 감탄을 보내면 그보다 강력한 응시와 칭찬은 없다.
감탄은 뻔한 일상을 기적으로 만들고 지루한 하루하루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며 사소한 일에 감사하게 만든다.
감탄하기로 마음먹으면 칭찬이 필요하지 않다.
그림그리기에 몰두할까봐 글씨는 펜으로만 가르치고대화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문답식 질문만을 강요하면
아이에게 글씨는 어려운것이고 대화는 괴로운것으로 남는다.
좋아하고 잘하는것을 중심에 두고 그것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가르치면 그 과정에서 아이는 행복하고 즐겁다.
만약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재미있는기억으로 남으면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은 결국 실패할수밖에 없다.
절대적으로 완벽한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돌연변이는 우주가 움직이는 근본원리중의 하나며, 완벽하게 깨끗한
어떤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티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결핍된것을 채워 흠이 없는 상태로의 노력은 실패할수밖에 없다. 오히려 지금있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이에 긍정하며 만족할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훨씬 생산적이다.
배움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고 조금씩 더 나은 행동을 하는 과정이 쌓이면서 일어난다.
이러한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 만 아이와 엄마는 성장할수 있으며 그러려면 엄마가 먼저 배움이 필요하다는것을 인정해야 한다.
엄마의 섣부른 공감이 아이를 병들게 한다.
말은 의사소통의 여러수단중 하나에 불과하다
의사소통할때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겨우 7% 정도다
나머지 93%는 목소리톤과 표정,태도, 분위기, 눈빛, 제스처 등의 신체언어로 전해진다.
그러니 아무리 멋지고 훌륭하게 교양있는 말을 한다고 해도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진심으로 대하는지는 태도로 충분히 알수가 있다.
엄마가 먼저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엄마들에겐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체화되어 있어 자기도 모르게
남의 시선을 우선으로 두곤 한다.
남의 시선따라 살려고 혹 항상 자신이 어떤지 점검하며 뭔가 어긋난것 같으면 불안감을 느낀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켓속담이 있다.
'오늘 꼭 해야할일이 있는가?'
'오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가?'
'오늘 꼭 가야할 곳이 있는가?
살다보면 때로 멈추고 싶을때가 있다. 아이의 굥육을 위해, 치료와 회복을 위해
생계를 위해, 미래를 위해, 노후를 위해, 마치 컨베이어 벨트 작업장에서 공장 노동자가 일감을 처리하듯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 '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럴땐 잠깐 눈을 들어 산과 들과 하늘을 본다.
큰아이가 방학내내 방바닥을 뒹굴고 있는 아이가 마뜩잖아서 '계획을 세우고 생활해봐' 라고 핀잔을 주었다.
아이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모든 사람은 목표가 같아. 결국 다 죽잖아. 그러니 남는것은 과정뿐이야, 과정이 좋으면 다 좋은거야'
삶은 그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
길은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는것' 이 곧 목적이며, 그과정을 충실히 경험한다면 삶의 목적은 달성되는지도 모른다.
외적인것(성별,외모,성적 등) 은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습니다.
가장 크게 자존감을 깎아 먹는 말은 바로 성별과 외모에 대한 비난 또는 칭찬입니다. 성별과 외모에 대한 비난은
아이에게 수치심을 심어줍니다. 자신을 근본적으로 '함량미달' 인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거지요.
침묵하면 됩니다.
때로 침묵만큼 강한 울림을 주는 언어가 없습니다. 침뭄ㄱ이 아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아이가 '내가 결정했어' 라고 느껴야 합니다.
자존감은 '내가 통제하고 있다' 는 감각이빈다. 자존감의 반대는 '아무것도 할수 없어' 라는 무기력입니다.
따라서 엄마들은 아이의 결정력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네가 알아서 해' 라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 말은 아이에게 자유를 허용하는것이 아니라
막막함을 줄수 있습니다. 어쪄면 버려졌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완전한 자유는 오히려 무기력에 빠지게 할수 있습니다.
훈련은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훈련은 배움의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치약을 짜지 못하던 아이가 조금씩 딱 적당하게 치약을 짤수 있다는걸 스스로 발견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존감이 생깁니다. 힘들지만 노력했고, 성과를 거든것이지요.
자신감을 성공의 경험이 쌓였을때 생기는 최종결과물입니다. 훈련은 작은 성공을 할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현실은 의지대로 창조된다' 라고 말했다.
이말은 마법사처럼 세상을 마음대로 바꿀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보겠다' 는 강한 의지를 가진다면 그 의지대로 세상을 볼수있다는 말일게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며 그 안경에는 특정한 색의 렌즈가 끼워져 있다.
렌즈에 투과된 색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것을 알아차리면
우리는 안경을 벗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만들어 낼수도 있고 보이는대로가 아니라 보고 싶은대로 보는것이 가능하다
죄책감과 불안감은 사양
엄마가 당당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휠쓸리는 엄마야 말로 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다. 주변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히 아이의 '삶' 과 '생명' 이
피어나게 하는데에만 집중하려면 그 공간에서 떠나야 했다.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바르고 창의력도 갖춘 학생을 키워 내려는 학교의 목표로부터 아이를 지켜낼 자신도 없었다.
자칫하면 그 기준에 맞추느라 연약한 아이를 더 힘들게 한것이 분명했다
비스비슷한 사람들이 비스비슷하게 살아가는 대도시 아파트촌은 비교와 경쟁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다
그곳에 머물다가는 아이와 나를 부족하고 뒤떨어진 존재로 바라보게 될게 틀림없었다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 아이에게 결핍된것을 채우기 위해 안달복달했더라면 분명 더 큰 죄책감과 후회가 남았으리라
'엄마역할' 을 완벽히 해내려고 해봐야 불가능할뿐더라 그런다고 아이가 잘 자라는것도 아니다. 엄마가 얼마만큼 열심히 하든
아이는 제 운명대로 자랄것이다.
시체처럼 열흘을 살았던 아이에게는 '삶의 즐거움' 이 필요했다.
기쁨으로 가득한 생생한 삶의 감각을 느끼고 다시 삶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라면을 주기로 했다
모든걸 희생해서 자식만을 돌보는 사람은 자식에게도 나중엔 큰 부담이 된다
문제가 닥쳤을때 내식대로 자신있게 해결해 나가는 사람
자식에게 '롤모델' 이 될수있도록 자신만의 기준점을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가 너무 고맙거나 너무 미안하거나 원망스럽다거나 불쌍하다면 그 불편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소중한 에너지를 쓸테니까 말이다.
중요한것은 아이의 삶만큼 자신의 삶도 소중히 여기는 '나다운 엄마' 가 되는것이다.
엄마가 자기 몸에 맞는 편안한 '엄마 옷' 을 입어야 엄마의 삶이 즐겁고 그래야 아이의 인생도 편안하게 흘러간다
엄마가 여유로워야 아이가 그 빈공간에 자기자신을 펼친다.
'뻔뻔한 엄마' 가 아이도 잘 키우는 이유다.
아이와 엄마는 완벽하게 다른존재다.
따라서 아이의 성취는 엄마의 공이 아니며, 아이의 실패 역시 엄마의 탓이 아니다
그러니 엄마들은 '아이에겐 스스로 자라는 힘이 있다' 는것을 믿어야 한다.
아이가 죽을병에 걸리고서야 나는 비로서 알게 되었다
내가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모든 일은 아이'만'을 위한게 아니었음을.
나는 한번도 아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고, 아이가 원하는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만약 아이가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아이를 위해서' 라는 이름으로
나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느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 자신의 목숨을 지켰는지 모른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무의식적인 음흉한 시도가 성공하지 못해서
MRI 는 찍는 기술보다 판독실력이 더 중요하다.
세브란스 병원의 유능한 영상의학과 교수에게 판독을 받았더라면 종양의 조짐을 미리
발견했을지도 모르는일이었다.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가족의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거부할것인가, 받아들일것인가,
비극으로 받아들일것인가, 희극으로 받아들일것인가
누구를 주인공으로 오늘은 어떤 드라마를 써 나갈것인가
이 세상에 미리 대본이 정해져 있는 삶은 없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채플린-
엄마는 불안을 먹고 사는 존재다. 불안은 피할수 없는 엄마의 숙명과 같다.
불안의 원인은 '모른다' 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라는 타자를 모르면서 알아야 한다고,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알수 없는 미래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엄마의 시도는 100% 실패할수 밖에 없다.
삶은 늘 예상치 못한 일, 원하지 않는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생각이 한번 머리속에 똬리를 틀면 멈출방법이 없다.
현재가 휩쓸리면 멈추기 어렵다. 무서운것은 엄마가 드라마속 비련의 주인공이 될수록
아이는 정서적으로 방치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천만원이 넘는 명품 가방이나
보석을 욕심내는 마음과 큰 키, 예쁜 외모를 바라는 망미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오로지 '남들보다 더 낫다' 는 인정과 칭찬을
'남들이' 해주길 바라는 욕심이었다. 그러나 남들이 박수치는 일회성 인정을 바라는 일에 끝이 있던가?
남들의 인정과 찬탄을 바랄수록 우리는 영원히 '나의 부족함' 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밑지는 장사판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큰키' 가 아무 데도 쓸데가 없다는걸 명명백백하게 깨닫자 아이의 작은 키는 순식간에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 했던 지위를 잃어버렸다.
키는 비록 작지만 걷도 뛰는데 문제가 없는 두 다리를 가진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일인가?
증거를 수집하든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지 마세요
던지고 때리는 공격적인 행동을 하던 아이가 '엄마 때문에 너무 속상해' 라고 울게 되는것은 엄청난 성장입니다
자기감정을 알고 언어로 적절하게 표현하기야 말로 어른도 잘 못하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기술이거든요.
하지만 '아이는 내가 다 알아' 라고 착각하는 엄마들은 이것 역시 문제 행동으로 바라봅니다. 엄마는
아이의 문제 행동리스트에 '반항적이다' 라는것을 추가합니다.
엄마의 '지금 삶' 을 긍정하세요
가난하건 전업이건 워킹맘이건 지금 있는 그 자리의 삶을 최대치로 살아보세요
걱정할 시간이 없어서 걱정을 안하게 되는 날이 올겁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수는 없다.
결함투성이의 나, 이중적인 나, 이기적인 나를 따뜻하게 안을수 있어야 아이에게 사랑이
전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질문하고 배우는 시간이 이렇게 황홀할수가 있나
그동안 나느 일상을 살면서 '너무 많이 생각한다' 나느 이유로 스스로를 억누르거나
나믇ㄹ에게 핀잔을 들었다. 말한마디에 포함된 여러 의미들을 세세히 가려 묻는게
나는 재미있고 당연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너무 따진다며 힘들고 어려워했다.
그래서 생각이 생각을 낳는 재미를 일부러 피했고 호기심과 궁금증은 되도록 표현하지 않았따.
그런데 수업시간에는 무엇을 질문해도, 어떤 엉뚱한 생각을 말해도 진지하게 듣고
이해해주는 대답해 주는 선생님과 동료들이 있었다. 환대란 이런것이다.
거리낌 없이 본성을 드러내도록 옆에 있어주고 보아 주는것 , 운전대를 잡았을때
터져 나온 눈물은 비로소 '나다운것' 과 만나서 느낀 감동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1년만에 그만둘수도 있고 어떤사람은 20년동안 지속할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평생 엄마 노릇을 하는 인생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성장하는삶, 자유로운 삶이란 더 많은 정체성을 경험하면서 풍부해지는 삶이 아니던가?
아기를 보살피는 일은 고된 노동에 가깝지만 아기가 한번 웃으면 모든 시름이 다 녹는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생활의 어둡고 남루한 흔적에서도 달콤한 웃음이 묻어난다
엄마는 아이의 웃음을 찾아 피워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유머는 '지금' 삶을 얼마나
강렬하게 느끼는가에 대한 이야기며 엄마야말고 자신의 삶을 힘껏 살아냄으로써 생명을 살리는 존재여야 한다.
그럴때만 아이 역시 사는 동안에 피해 갈수 없는 불운과 불행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웃으면서
삶을 긍정할줄 아는 사람이 된다.
엄마가 아이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삶의 기술이 바로 이것이다.
아이는 '나만 왜 그래?' 하는 억울함과 화남 없이 '나 좀 알아주지' 하는 기대와 욕심없이
할수없는건 그대로 순하게 받아들이고, 할수 있는건 있는 힘껏 즐긴다. 아이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자기가
어떤 처지이든 삶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
그게 아이가 사는 법이다.
지금 누릴수 있는 삶의 즐거움보다 잃은것을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아픙로 더 갖지 못할까봐 불안해 하는
'엄마' 라는 사람은 그러니 아이에게 배울일이다. 가장큰스승은 아이이다.
자존감 높은 아이의 뒤에는 늘 경청하는 엄마가 있다
아이의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를 펼칠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었을때 무럭무럭 자란다.
굳이 애써서 활기차고 재미있고 교육적으로 놀아주려 하지 않아도 엄마가 주의깊게 듣는다면
아이는 마음껏 자기를 제 결대로 만들어 갈것이다.
아이들을 매일 가르치고 치료수업을 하는일은 때로 지루하고 막막하다
쇠귀에 경을 읽고 있는것 같고 하도 같은 말고 행동을 반복해서 기계가 된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럴때 나는 나를 의식적으로 좀더 느리게 만든다.
수업목표에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을 접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함께 움직여 본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펼쳐지는데 '어제와 다른 오늘' 이 '발견' 디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대답할때 눈을 마주치지 않던 아이가 오늘은 눈을 0.5 초쯤 맞추고 돌렸다는걸 알게 된다.
매일같이 똑같은 아이때문에 속상한 엄마들은 내가 '어머니, 오늘 1초쯤 눈을 맞췄어요' 하면 심드렁해 하기도 한다
장점과 단점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엄마는 아이가 잘못하고 있는것, 부족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잘하는 열가지에 감탄하고 박수를 치기보다는 못하는 한가지를 어떻게든 잘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실패할수밖에 없다.
아이가 못하는것에 집중하면 아이의 장점은 '당연' 한것으로 여겨진다.
아이들은 이미 가진것, 이미 잘하고 있는것은 인정받지 못한채 늘'부족한 아이'로 살아간다.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은 실패할수 밖에 없다.
절대적으로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돌연변이는 우주가 움직이는 근본원리중의 하나며, 완벽하게
깨끗한 어떤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티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결핍된 것을 채워 흠이 없는 상태로 만들려는 노력은 실패할수 밖에 없다. 오히려 지금 있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이에 긍정하며 만족할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훨씬 생산적이다.
엄마가 아이게게 꼭 가르쳐야 할것은 일생생활 습관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훈련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경계를 확실히 정하고, 어떻게 하는지 행동으로 보여주고, 함께 해보는 과정을 반복하는것이다
아이 역시 일상생활 습관이 몸에 배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관점을 갖는것도 중요하다
배움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조금씩 더 나은 행동을 하는 과정이 쌓이면서 일어난다
이러한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만 아이와 엄마는 함께 성장할수 있으며 그러러면 엄마가 먼저 배움이 필요하다는것을 인정해야 한다
말 몇마디로 아이를 바꾸겠다는 욕심을 버린다
말은 의사소통의 여러수단중 하나에 불과하다.
의사소통할때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겨우 7% 정도다.
나머지 93%는 목소티톤과 포정, 태도, 분위기, 눈빛, 제스처 등의 신체언어로 전해진다
대화란 '상대방을 설득하는것이 아니라, 공통 이해를 찾아내는 행위다' (데이비드 봄)
아이와 잘 대화하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것과 아이가 원하는것을 먼저 살펴야 한다.
습관적으로 하던 나쁜말버릇이나 짜증섞인 어투를 고치면 그건 말의 내용때문이라기 보다
예전과 다른행동을 해서 얻어지는 훈련의 효과다 어떤 경우에도 말보다 태도와 마음이 우선이다.
직접 부딛쳐서 성장할 기회를 줘라
'선후배 사이에서 일이 생긴건' 드디어 아이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갈등을 마주하게 됐고
이런 갈드잉야말로 앞으로 현실에서 다 자주 마주하게 될 종류의 것이었다.
아마 아이는 새로운 부딪힘을 게속 경험할것이다. 그리고 부딪히면서 단단해질 것이다.
살다보면 때로 멈추고 싶을때가 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치료와 회복을 위해, 생계를 위해 미래를 위해, 노후를 위해, 마치 컨베이어 벨트 작업장에서
공장 노동자가 일감을 처리하듯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잠시 멈추어 느긋하게 순간에 머무리는 힘, 그럴땐 잠깐 눈을 들어 산과 들과 하늘을 본다
한번 멈추어 보면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나로서' 살수 있다.
언제든 아이의 눈빛속에서 광활하고 깊은 우주를 느낄수 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있고 거기에 소속감을 강하게 느낄수록 더 많은 삶의 의미와 더 깊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중요한것중의 한가지는 지루하고 뻔한 관계를 넘어 다양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인생과 아이의 인생이 더불어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라도 공동체는 꼭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엄마로 있을때 공동체를 만들기가 가장 수비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엄마는 없기 때문이다.
나와 같거나 다른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엄마로 있을때 꼭 만끽하기 바란다.
삶의 그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 길은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는것' 이 곧 목적이며, 그 과정을 충실히 경험한다면 삶의 목적은 달성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학교를 앞에 두고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
학교는 무조건 따라야 할 법전도 아니고 목적지에 가는길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도도 아니다.
그저 몇 대목 참고할수 있는 참고문헌일 뿐이다.
과정속에서 격려를 합니다.
칭찬 대신 할수 있는것이 '격려' 입니다. 칭찬이 결과에 주목한다면 격려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격려는 추임새입니다. 판소리 공연을 보면 소리를 하는 사람 옆에 서 부긍로 박자를 맞추면서
'얼쑤',';그렇치' 하고 맞장구를 치는 고수가 있습니다.
고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공연하는동안 옆에 딱붙어 있으면서 '잘하고 있다' 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합니다.
격려는 이와 같습니다. ' 너 지금 그거 하려고 하는구나,'잘하고 있어' 처럼 아이가
현재 하고 있는 행동을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충분히 지지를 받은 아이라면 설사 결과가 나쁘더라도 자존감을 지켜낼수 있습니다.
외적인것(성별, 외모, 성적등) 은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습니다.
가장 크게 자존감을 깍아 먹는 말은 바로 성별과 외모에 대한 비난 똔느 칭찬입니다.
'여자가 뭐 이렇체 칠칠치 못하냐?'
'남자는 울면 안돼'
'못해도 이정도 키는 돼야지'
'누가 1등이야?' 와 같은 말이 대표적입니다.
성별과 외모에 대한 비난은 아이에게 수치심을 심어줍니다.
자신을 근본적으로 '함량 미달' 인사람으로 여기게 되는것이지요.
때로 침묵만큼 강한 울림을 주는 언어가 없습니다. 침묵이 아이의 존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아이가 '내가 결정했어' 라고 느껴야 합니다.
자존감은 '내가 통제하고 있다' 라는 감각입니다. 자존감의 반대는 '아무것도 할수없어' 무기력입니다
따라서 엄마들은 아이의 결정력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네가 알아서 해' 라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 말은 아이에게 자유를 허용하느것이 아니라 막막함을 줄수있습니다. 어쩌면 버려졌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완전한 자유는 오히려 무기력에 빠지게 할수 있습니다.
옆에서 함께 결정하고 결정을 지켜봐주면 아이는 자신이 내린 결정에 흔들림이 없게 됩니다.
생활습관을 들이는 훈련에 자꾸만 실패한다면
훈련은 경계를 세워줍니다.
아이들이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경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자, 절대로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훈련은 안정감과 신뢰를 줍니다.
자극이 비일관적으로 주어졌을때 불안이 가장 높아진다고 합니다.
훈련을 통해 습관이 확립되면 아이에게 세상은 좀 덜불안한곳으로 느껴지고 아이는 안정감을 찾습니다.
훈련은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훈련은 배움의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치약을 짜지 못하던 아이가 조금씩 딱 적당하게 치약을 짤수 있다는 걸
스스로 발견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존감이 생깁니다.
힘들지만 노력했고, 성과를 거든것이지니요.
자신감은 성공의 경험이 쌓였을때 생기는 최종 결과물입니다. 훈련은 작은 성공을 할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훈련은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단번에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엄마가 '욱' 하는 이유는 대게 행위의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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