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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빠빠라기

빠빠라기

갑갑하고 무거운 껍질로 발을 감싸고 다니는 것은 몸에 안 좋습니다. 풀잎에 반짝이는 아침 이슬을 맨발로 밟고 다니면 온갖 질병이 달아납니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몸통과 엉덩이에 많은 거적과 허리도롱이를 걸치고 다닌다. 그래서 살갗이 흉터와 눌린 자국투성이다.

여자들이 몸을 그렇게 단단히 감추고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그것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100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배를 만들게 한다. 그렇치만 정작 주인은 만들어서 갖다 바친 배로 둥근 쇠붙이와 묵직한 종이를 챙기면서 거적위에 느긋하게 누워 술이나 마시고 담배나 뻑뻑 피우며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갖다두는 돈이 점점 많아져서 나중에는 굳이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지 않더라도 돈은 저절로 불어난다.

부자들은 대부분 중병에 걸린채 병든 마음을 치유하지 못하고 많은 돈이 베푸는 위력에 젖어있다.
그들은 비를 맞아 썩은 과일처럼 속이 잔뜩 부푼채, 힘든일은 다른 형제들에게 시키고 자기는 몸에 비계를 만들며 뚱뚱해진다.

그러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더러워질 이유가 없는 허여멀겋고 파리한 손을 보며 기뻐할 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힘을 끝없이 빼앗아 자기가 차지하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며 잠을 설치는 일이 없다. 그들은 다른사람에게 돈을 나누어주면 그들도 좀 쉽게 살아갈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유럽에 사는 사람 가운데 절반은 더럽고 힘든일을 많이 해야 되고, 나머지 절반은 일을 조금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        ㅇㄹㅍ일하는 사람들은 햇볕 아래에 느긋하게 앉아 쉴 시간이 없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럴 시간이 한없이 많다.
돈을 조심하자.
둥근 쇠붙이와 묵직한 종이 다발을 내밀며 우리마저 그것을 탐하게 만든다. 그들은 그것이 우리를 부자가 되게 하고 행복하게 할수있다고 말한다.  벌써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가 그것에 눈이 멀었고 심각한 병이 들었다.

많은 물건이 빠빠라기를 가난하게 만든다.
물건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궁핍하다. 그것은 곧 위대한 영혼이 빚어낸 것을 적게 갖고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a
유럽에서는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이마에 불대롱을 대고 불을 당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없듯이 가진것이 없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머리속에 깊이 각인 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난 유럽 어디에서도 거적에 누웠을때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고 팔다리를 마음껏 뻗을 수 있는 움막을 본적이 없다. 물건들이 번쩍번쩍 빛나고 소음을 만들어 잠시도 눈을 감고 쉴수 없었다.
가진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불쌍한 사람이라며 슬퍼한다.

햇빛이 내리쬐는 밖으로 나가 강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거나 여자들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싶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고, 즐겁게 놀며 한가하게 보낼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죽인다.  시간은 버젓이 있으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을 빼앗아 가는 수없이 많은 일들을 거론하며 아무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기 자신 말고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일을 하기 위해 불만스러운 표정을 앉아 있는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시간이 생기고 다른사람이 시간을 내주면 빠빠라기들은 서로의 시간을 주고 받으며 그것을 훌륭한 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그때는 의욕이 없고, 기쁨없이 했던 일 때문에 몸이 곤죽이 되어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일을 할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는데도 내일 하겠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동안 달이 뜨는것을 몇번 본다는것을 알게 되고, 상당히 여러번 달이 뜨고 지는것을 경험한 사람은 그 숫자를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것이다
’난 이제 곧 죽게 될거야‘
그런 말을 하면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진짜로 죽게 된다.

난 유럽에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것을 한탄하지 않는 사람을 딱 한번 보았다.
그는 가난하고 더러워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으며 언제나 천천히 걸었고 눈에는 평화롭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시간을 적절히 이용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그래서 이렇게 가난하고 형편없는 쓰레기가 되었죠.‘

그 사람은 시간이 많았지만 행복해 하지 않았다 .
빠빠라기는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보낼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며 온 힘을 쏟는다.
빠빠라기에게 시간은 미끄러운 손으로 잡은 뱀처럼 너무 세게 잡으려고 하니까 오히려 빠져나가는것같다.

빠빠라기는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
그는 무엇을 볼때마다 그것이 자기에게 무슨 이득을 주는지, 자기에게 어떤식으로 이로울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대부분의 빠빠라기는 자기가 직업으로 하는 일만 할줄 안다.
요컨대 직업은 뛰어다니고, 맛보고, 냄새 맡고, 싸우는 일 중 단 한가지 일에만 계속해서 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흰둥이들 가운데 직업때문에 계속 앉아만 있다보니 푸아(돼지) 처럼 엉덩이에 지방이 달라붙어서 잘 걷지 못하고, 응달에 앉아 투씨를 쓰면서 붓대만 잡고 있어서 창을 던지는 것은 고사하고 들지도 못하고, 별을 쳐다보거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 내는 일만 하느라 야생마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알수 있다.

성년이 되어도 어린아이처럼 뜀박질을 잘하는 빠빠라기는 별로 없다.
그들은 어디가 단단히 고장난 사람처럼 발을 질질 끌면서 엉거주춤 걸어다닌다.
직업 때문에 몸이 굳어서 뼈는 뻣뻣해지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근육은 싱싱한 탄력을 잃는다. 직업 또한 삶을 망치는 아이투(악령)이다.

어쩌다 벗을 만나도 둘 다 뭉칠 된 종이에 머리를 처박고 똑같은 것을 읽었기 때문에 새롭게 해줄말이나 특별히 할말이 없다. 그래서 아무말도 하지 않거나 이미 종이가 까발려 놓은 사실들을 반복한다.
신문은 모든 인간이 똑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내머리와 생각을 정복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신문의 생각, 신문의 주장을 강요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래서 아침에 뭉치로 된 종이를 읽으면 점심때쯤에는 다른 빠빠라기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 있다.

신문은 일종의 기계다. 그것은 날마다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낸다.
한사람 한사람이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들을 내놓는다.
그러나 대부분 생명력도 없고 힘도 없는 생각들이다. 그것은 머리속을 꽉 채우기는 하지만 강하게 만들지 못한다. 모래로 머릿속을 채우는것과 같은 짓이다.

빠빠라기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생각이 습관이 되고, 꼭 해야만 하는일이 되었으며 정말 강제로 해야 하는일이 되어 버렸다. 항상 뭔가를 생각해야 하는것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것을 못 견뎌한다.
그래서 머리를 깨어있는데 다른 감각을 쿨쿨 자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똑똑한 사모아 사람은 따뜻한 햇살에 느긋하게 몸을 맡긴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햇빛은 머리로만 쬐는 것이 아니라 손,발,허벅지,배, 그밖의 모든 신체 부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피부와 살이 나름대로 생각하게 둔다. 그것들도 머리와 다르기는 하지만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빠빠라기는 여행지에서도 생각에 몰두하느라 여행길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젊은이들이 부르는 뱃노래도 듣는둥 마는둥, 처녀들이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지 못한다. 그러다가 산등성이가 지나가면 다시 새로운 생각을 한다.
몸과 배에서 동떨어진 생각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여행을 한것 같지도 않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우폴로에 그냥 있는 편이 더 낫지 않았겠는가?

생각이 담은 많은 거적들이 함께 묶인것을 빠빠라기는 ’책‘ 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것을 온나라 뿌린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의 거적을 받고 똑같은 병에 걸리게 된다.

빠빠라기는 똑같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많은 생각들을 머릿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그들은 억지로라도 매일 일정한 분량의 생각 거적을 갉아먹어야 한다. 오로지 마음이 건강한 자들은 그런짓을 거부하고 자기의 독자적인 생각으로 그 그물에서 벗어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생각들을 머릿속에 너무 많이 멀어넣어 그 안에 가득 차는 바람에 한줄기 빛도 들어갈수 없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것을 ’교육한다‘ 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그렇게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가 ’교육’ 이라는 이름으로 도처에 만연해 있다.
교육은 머리를 최대한 가득 채우는것을 의미한다.

유럽인들은 모두 자기의 머리를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가장 빠른 불대롱으로 만드는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허비한다. 빠져나가려해도 억지로 꿇어앉힌다. 빠빠라기는 무조건 아는것이 있어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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